영국 여행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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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역뜰 작성일22-05-02 00:00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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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9세가 죽은 후 필리프 3세가 국왕이 되었는데 그는 재위 15년 동안 특별한 정치적 업적을 쌓지 못했고 1285년, 키 크고 잘 생긴 ‘미남자’ 필리프 4세가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이 미남자는 겉만 그럴 듯한 것이 아니었는데 결혼과 전쟁으로 왕실 영지를 크게 넓혔고 관리의 공무 집행을 강화하고 국가 기구를 정비했으며 전국에 적용할 법률을 편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아들 루이 10세, 필리프 5세, 샤를 4세는 모두 단명했는데 이들의 재위 기간은 모두 합쳐야 14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328년, 샤를 4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카페 왕조도 막을 내렸고, 국왕 자리도 잠시 공석이 되었는데 당시 주요 왕위 경쟁자는 두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미남자 필리프 4세의 사촌 필리프 드 발루아와 필리프 4세의 외조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였는데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4세의 직계 혈통이라 왕위계승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귀족들은 영국인이 자기 나라의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살리카 법전』에 나오는 여자는 재산을 계승할 수 없다는 조항을 들어 영국 왕의 왕위 계승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따라서 필리프 드 발루아가 필리프 6세로 추대되었고, 그때 부터 발루아 왕조(House of Valois)가 시작되었는데 필리프 6세는 왕이 된 뒤 프랑스 서남부에 있는 영국 영토를 수복하려고 계획했습니다. 에드워드 3세는 완강히 저항하면서 자신이야말로 정당한 왕위 계승자라고 했는데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는 프랑스와 영국 간에 벌어진 ‘백년 전쟁(Hundred Years' War)’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실 왕위 쟁탈전은 전쟁의 도화선에 불과했고 이면에는 더 심각한 원인이 있었는데 우선 영토 분쟁이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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